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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장 한 귀퉁이에는 귄터 그라스의 임 크렙스강과 요코 왓킨스의 요코 이야기가 나란히 있다. 기억에 관한 글을 쓰면서 두 책을 자주 비교하다 보니 독일과 일본을 다룬 이야기들이 한데 모아졌다. 실화에 바탕을 둔 두 소설은 동일하고 다르고, 다르고, 같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에서의 민간인 추방자/귀국자의 수는 각각 1,200만 명과 320만 명에 달했다. 규모가 압도적이고 당사국들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의 공식 기억과는 비교적 동떨어져 있다.
가해자인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의 희생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아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악당'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강해서 '나치 독일인의 희생자'나 '제국 일본인의 피해자'라는 말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치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독일인이 악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죽음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일본 제국의 피실험자라고 해서 모두 미군 선전 매체가 묘사한 것처럼 번쩍이는 '날카로운 눈'으로 무차별 살해된 것은 아니다.
전쟁의 극한 상황은 연합국이나 추축국과는 상관없이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낳았다. 따라서 2차대전의 역사적 단계에서 악역을 맡았던 나치 독일과 제국주의 일본에 희생자가 많았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욕심쟁이"와 "요코 이야기"는 둘 다 그렇다.
그러나 두 소설이 그리는 기억의 정치적 지형은 매우 다르다. 두 작가가 위대한 담론이나 이념을 지향해서가 아니다. 한 사람이 역사를 왜곡하고 다른 사람이 역사적 진실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얼핏 보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미묘한 시각차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너무 민감한 기억의 회로판을 통과한 후, 이 사소한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두 책을 갈라놓은 것은 역사적 감성이었다. 귄터 그라스와 요코 왓킨스는 작가로서 갖고 있던 문장의 붓놀림과 향기보다는 자신의 기억을 문제 삼는 역사적 상상력과 비판적 감수성에서 큰 격차를 보였다. 두 소설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의 핵심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피해만 기억하는 요코 이야기
'요코모노가타리'는 1945년 패전 당시 11세 소녀였던 작가와 그 가족, 한반도 북부 나남에서 일본으로 돌아가던 중 생명의 위협과 굶주림, 성폭행에 대한 공포 등 생존의 참상을 담은 이야기가 잘 기록돼 있다.
작가는 어린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시 일본인 귀환자들이 겪었던 고통을 알기 쉬운 언어로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행복한 '나'는 일본으로 돌아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시련을 겪지만, 그 시련을 통해 성장해 고통을 이겨낸 결과 적절한 보상을 받는 서사 구조는 오히려 영웅적인 이야기처럼 단순함 덕분에 어린 아이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1986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대나무 숲에서 이렇게 멀리'라는 제목으로 2005년 4월 '요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당시 국내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비판의 표면에는 결코 올라오지 않았다. '일본제국이 패망한 1945년 당시 한반도 북단 나남에서 일본으로 어려운 피난길을 간 일본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자전적 소설'이나 '한순간 국적을 잊으면 전쟁이 가족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당시 일간지의 서평에는 "고난에 빠지기 어려운지 차분하게 묘사하는 성장의 소설"이라는 미지근하지만 호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2007년 1월, 이 책은 한국 언론의 새로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진보·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멍청한 한국인과 일본인조차 거부한 '요코모노가타리'를 펴냈다", "일본 전범 딸이 쓴 조선에 대한 황당한 회상", "일본판 미국에 속은 안네일기", "왜곡투성이의 요코모노가타리" 등을 쏟아냈다.캐티언 물품 제목 그대로 이 책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핵심이었다.
2년도 안 돼 이렇게 급변한 한국 언론의 태도는 궁금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추적해 보니 급변한 이면에는 태평양 건너 한인들의 '거리 민족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뉴욕과 보스턴 교포들이 제기한 문제의 핵심은 이 책이 식민주의와 전쟁의 희생자인 한국인을 가해자로, 일본인을 가해자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 역사에 무지한 미국 학생들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거꾸로 새길 수 있다는 이들의 항변은 미국적 맥락에서도 일리가 있는 듯하다. 사실, 한국계 미국인 분노는 그들의 아이들이 나쁜 한국인들의 후손으로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 조직되었습니다.
우선, 이것은 서양을 중심으로 조직된 미국 역사 교육이 직면한 문제이다. 미국 청소년들이 20세기 동아시아 현대사에 대한 초보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코 이야기』의 서술 구조도 문제다. 요코는 일본 식민주의의 역사적·도덕적 부당성과 일본군이 저지른 범죄와 만행을 생략한 채 자신과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묘사한다. 저자에게 미안하지만 역사 감성이 전혀 없다. 그 결과 요코의 기억에서 역사적 맥락이 제거되고, 집단적으로 '히키야게샤'라고 일컬어지는 일본 난민들의 희생은 탈역사화되고 그들의 고통만 일방적으로 강조된다.
다만 이 책이 거짓말로 가득 차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가해와 희생을 이분법적으로 반대하는 소녀의 눈을 통해 자신의 생존 이야기를 그려낸 이 책의 단순한 서사는 거짓말과는 다른 이야기다.
일본 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소련군에 항복한 일본군 및 민간인은 130만 명에 이른다. 1945년부터 1949년까지 4년 동안 약 100만 명이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나머지 30만 명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45년 겨울 만주에서만 약 10만 명의 일본 군인과 민간인이 기아와 추위,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전쟁 희생자들의 경우 종종 그렇듯이, 일본의 민간인 희생자들은 대부분 노인, 여성, 아이들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한반도 출신 약 7만명이 징용과 강제징용, 폭격 등으로 숨진 것을 감안하면 동북아 일본인 희생자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요코의 기억이 단순히 역사와 분리해 개인적인 고통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요코의 고통을 거짓말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한국 사회의 독재는 요코의 고통을 완전히 부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생물학 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의 장교였던 마타도르를 넘어, 그녀는 그녀의 <요코 이야기>를 거짓말과 역사 왜곡으로 몰아넣는다. 나남에서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았고, B-29에 의한 폭격도 없었으며, 요코 가족이 대피했을 때 북한에서는 아직 '공산당군'이 조직되지 않았다는 점이 요코에 대한 기억을 오도하는 근거가 됐다.
실증주의 메스로 증언의 부정확성을 해부하고 그 부정확성을 근거로 증언 자체를 거짓말로 몰아가는 이 논리는 일본 우익의 위안부 부정과 매우 유사하다. 할머니들의 막연하고 자의적인 기억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고 증언을 뒷받침할 공문서도 없어 위안부 역사를 지우려는 일본 우파의 논리도 실증주의를 무기로 삼고 있다.
이 논리는 이미 홀로코스트 부정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문서와 기록물을 가진 가해자들의 힘이 증언밖에 없는 하층민 피해자들의 기억을 지우는 무기는 없다.
인식론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한국 언론이 <요코 이야기>에 과민반응을 보인 것은 '일본=가해자'와 '한국=피해자'의 이분법이 흔들리는 것에 당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묘사된 '가해자 한국인'의 이미지가 '피해자 자의식 민족주의'의 역사적 정당성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이 어린 소녀의 개인적인 경험을 자의적으로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며 기억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외설적인 루머는 무시한 채 가해자로서의 요코의 입장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국의 피해자 의식과 민족주의가 드러낸 과민반응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요코 이야기'는 '한국을 이긴다'는 취향을 가진 일본의 한 우익 출판사가 일본어로 번역해 출간했다. 결국 한국의 피해자를 의식한 민족주의는 히키아게샤 모노가타리의 풍부한 문학 유산에 가려 존재감이 없었던 요코 스토리를 강조했다.
동아시아의 기억 공간에서 활동하는 한일 민족주의의 적대적인 공범들이 이런 식으로 비밀을 은밀히 폭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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