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산책하는 근대의 풍경 울프 런던을 거닐다

 만약 내가 예술가 Virginia Woolf를 묘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걷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소설 전체를 걸어다녔던 흔적을 감추고 있다. 흥미롭게도, 울프는 종종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도시를 걸어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1915년에 출판된 "The Voyage Out"이나 "Jacob's Room"에서 주인공은 도시를 짧게 혹은 길게 산책한다. Mrs. Dalloway는 어때?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본드 스트리트에서 꽃을 사기 위해 긴 산책로를 떠난다.


울프가 이런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우연이라고 믿기 어렵다. 보행기가 '익명의 바다'라고 할 수 있는 현대 도시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도시 보행자들은 존재의 새로운 현대적 측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울프가 극찬한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에도 워커들이 가득하다. 율리시즈는 블룸이 하루 동안 더블린의 거리를 배회하는 이야기이다. 한국 현대 소설도 예외는 아니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의 하루>에서 주인공 구보는 끊임없이 경성의 거리를 배회한다. 한국판 율리시즈를 연상시키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친구를 만나 조이스에 대해 논한다.


울프는 걷기를 좋아했다. 울프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회상하며 '여성과 허구'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걷기 시작했다고 썼다. 울프의 발걸음은 거침없이 다듬어진 잔디밭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 순간, 그 걷기는 알려지지 않은 한 남자에 의해 중단된다.


울프는 처음에 "셔츠와 모닝코트 안에 기괴하게 생긴 물체"가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를 제지한 사람은 교구 관리인이었다. 울프의 정신세계는 이 순간을 묘사한 것에서 엿볼 수 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이 문장은 의미심장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울프는 워커들이 교구 관리인으로 대표될 수 있는 시스템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제안한다.


걷기로 자유를 누린 울프는 잔디밭에 사색 보따리를 남길 수밖에 없다. 300년 동안 가꾸어 온 영원한 잔디를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산책하는 사람들은 상상력을 멈춰야 했다. 그토록 대담하게 잔디밭에 발을 내디뎠던 생각이 무언가에 쫓기는 물고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 짧은 에피소드에서 울프는 전통을 현대의 순간과 대비시킨다. 이른바 전통을 지키는 관리인의 모습은 셔츠와 모닝코트를 입은 관료의 상징이다. 관료기구의 경직성은 소설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울프가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근대에 대한 통찰은 근본적으로 과거의 이러한 구시대적 전통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전통은 본질적으로 여성을 '익명'으로 취급하는 역사였다. "역사상 여성들은 대부분 익명으로 살아왔다"고 울프는 탄식했다.


울프에게 모더니즘은 단순한 미적 운동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더니즘은 현대 내부에서 나오기보다는 그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예술적 경향이다. 따라서 삶과 경험을 새롭게 형성하는 근대성의 조건을 탐구하는 경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울프에게 현대성은 두 가지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동시에 전통의 유산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모더니즘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예술가마다 기술과 최첨단 기술에 대한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부 모더니즘 작가들은 썩어가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공개적으로 표현한다. 현대성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의 선택 문제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유럽 대륙과 영국의 모더니즘도 다르다. 유럽 대륙의 모더니즘이 '새로운'을 선언하는 전위적 성격이 강하다면, 영국 모더니즘은 전통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쇄신을 꾀한다.


영국 작가로서 새로운 소설 형식의 창조에 헌신한 울프는 무조건 전통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전통을 새로운 형태의 소설로 받아들인다. 18세기 감성주의 소설을 다시 쓰려는 울프의 노력이 그 좋은 예이다.


울프가 사라진 과거의 문학 전통을 회고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울프가 그 시대의 주류 모더니즘에 완전히 동의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울프는 당대 남성 작가들과 각을 세웠다. 같은 주제에 대해 토론할 때도 울프는 모더니즘의 이분법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곤 했다.


문학 전통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가졌던 T. S. 엘리엇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하다. 엘리엇이 문학 장르를 선형적이고 진화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과는 대조적으로 울프는 사회-역사적 관계의 관점에서 문학의 발전을 바라보았다.


울프는 과거를 이상화하거나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전통이 인간의 다양한 관행을 통해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이 그가 문학 교육을 통해 이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었던 이유이다.


울프의 생각은 그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울프를 현실에 대한 관심 없이 미학에 집착하는 '여성 작가'로 취급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말했듯이, 울프는 끊임없이 세상에 관심을 표명한 작가이자 지식인이었습니다. 그의 소설은 미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실험적이었다. 오히려 볼프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미학에 저항한 예술가였다고 할 수 있다.


울프의 이러한 특징은 단지 습득한 것이 아니다. 윌리엄스의 말처럼 울프의 모더니즘은 도시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런던은 울프가 그의 문학을 실험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다.


그의 수필들 중 몇 편에서 울프는 도시에 대한 애착을 드러낸다. 1975년에 앤솔로지인 런던 장면으로 출판된 다섯 편의 에세이는 원래 굿 하우스키핑이라는 잡지에 연재되었다. 또한 《가디언》에 실린 또 다른 수필 '런던인의 초상'도 나중에 발굴되었다. 이 수필들에서 울프는 1930년대의 런던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런던의 독>의 다음과 같은 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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